1. 중화학공업화란 무엇이었나? (산업구조 전환의 대전환)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중화학공업화 선언을 하며 대한민국 산업정책의 중심을 경공업 중심에서 철강, 기계, 전자, 조선, 석유화학 등 고부가가치 중화학 산업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단지 산업만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를 ‘기술 중심, 수출 중심, 자립 경제 구조’로 전환하겠다는 국가적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동시에 **대기업 중심 성장 전략**을 취함으로써 ‘재벌 중심 경제 구조’로 이어지는 기반이 되었다.
2. 중화학공업화는 왜 필요했는가? (자립 경제의 필수 조건)
1970년대 초반, 세계 경제는 **석유파동**과 **미·일 무역분쟁**, **냉전 체제** 등으로 불확실성이 심화되고 있었다. 한국은 여전히 수입 원자재와 경공업 중심 산업 구조로는 세계 경제 흐름에 취약했고, 자신만의 **기초 산업, 원천 기술, 자립 생산 능력**을 갖춰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박정희 정부는 이를 위해 **중화학공업화 6대 전략 산업**에 집중한다:
- 철강
- 조선
- 기계
- 전자
- 자동차
- 석유화학
이 전략은 거대한 자본과 기술, 고도의 계획이 필요한 만큼, **정부 주도 + 대기업 협력**의 구조로 설계되었다.
3. 정부의 지원 방식 (정책금융 + 면세 + 독점 사업권)
정부는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하면서 특정 기업들에게 집중적으로 자금과 혜택을 제공했다. 그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 정책금융: 한국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을 통한 저리 대출
- 세제 혜택: 투자세액 공제, 법인세 감면
- 독점 사업권: 특정 기업에 독점적 사업기회 부여 (예: 현대조선, 포항제철 협력사)
- 정부 보증: 해외차관 도입 시 정부가 보증 제공
이처럼 **국가가 특정 민간 기업을 전략적 파트너로 삼아 집중 육성하는 모델**은 결국 특정 대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구조로 이어졌다.
4. 누가 재벌로 성장했는가? (중화학공업화의 수혜 기업들)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핵심 수혜자는 현재 우리가 잘 아는 ‘재벌 그룹’들이었다:
- 현대그룹: 조선, 자동차, 건설 분야 핵심 파트너
- 삼성그룹: 전자, 기계, 석유화학 진출 가속
- LG(금성): 전자, 화학 부문 성장
- 대우그룹: 조선, 기계, 무역 전방위 확장
- SK그룹(선경): 석유화학, 통신 기반 마련
이 기업들은 대부분 중화학공업화와 함께 새로운 사업 분야에 진출했고, 정부의 정책적 우선 지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5. 재벌 체제의 형성 (경제력 집중의 시작)
정부와 기업이 함께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구조는 빠른 성장이라는 성과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소수 대기업에 자원과 권한이 집중되는 문제**도 낳았다. 이로 인해 **한국형 재벌 구조**가 형성된다:
- 소수 대기업에 금융·산업 자본 집중
- 재투자를 통한 계열사 확장
- 내부 거래·순환출자 구조 등장
- 중소기업과의 격차 확대
특히 이 시기의 성장 방식은 **시장경쟁보다는 정책 의존**, **독과점**, **관치금융**의 문제를 심화시켰다.
6. 경제 성장의 성과 vs 구조적 문제
긍정적으로 보면:
- 1970년대 후반까지 한국은 GNP 1,000달러 돌파
- 철강, 조선, 전자, 자동차 모두 **세계 수출 순위 상위권 진입**
- 국내 생산 구조의 고도화 완성
그러나 부정적 측면도 있었다:
- 소수 기업의 시장 지배력 강화
- 경제정책과 기업 간 유착 발생
- 고용 창출보다 **자본 중심 성장** 구조 고착
이러한 문제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재벌 구조 개혁**이라는 과제로 다시 부상하게 된다.
7. 결론: 빠른 성장, 깊은 그림자
박정희 시대의 중화학공업화는 한국을 농업국가에서 산업 강국으로 이끈 결정적 정책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정책은 **재벌이라는 한국 특유의 경제 권력 구조**를 탄생시켰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경제의 불균형과 사회 구조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경제는 분명히 이 시기에 비약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성장의 결과물이 누구에게 집중되었는가, 그리고 어떤 부작용이 있었는가에 대한 성찰은 지금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