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무엇이었나? (중화학공업과 기술국가로의 도약)
1.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시작 (압축성장의 본격화)
1972년, 대한민국은 이미 빠른 경제성장을 경험한 상태였지만, 여전히 자립 경제 국가로 보기엔 부족한 면이 많았다. 당시 경제는 섬유, 봉제, 신발, 가발 등 **경공업 중심의 산업구조**였고, 원자재와 핵심 기계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더 이상 단순 조립 산업으로는 국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1976)을 출범시킨다.
이 계획은 단순한 성장 목표가 아니라, **산업의 고도화, 기술자립,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 개혁의 성격을 띠었다. 특히 이 시기부터 한국 경제는 ‘중화학공업화’라는 새로운 성장 전략에 본격 진입하게 된다.
2. 정책의 핵심 목표와 전략
제3차 계획의 핵심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 산업구조의 고도화: 중화학공업 집중 육성
- 기술자립 기반 확보: 기계, 전자, 화학 등 핵심 산업 기술 국산화
- 수출 확대 및 외화 자립
- 고용창출과 소득증대
- 균형발전: 지역별 산업단지 확충
박정희 대통령은 이 시기부터 “선진국은 기술과 공업이 있다. 우리도 반드시 따라잡아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하며 **'중화학공업화 선언(1973)'**을 통해 국가 자원을 전방위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3. 중화학공업화 정책의 본격화
1973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중화학공업화 선언”을 발표한다. 이 선언은 한국 산업정책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는 이정표였다.
육성 대상은 다음의 6대 산업군이었다:
- 철강 산업 – 포항제철(현 포스코) 대규모 확장
- 기계 산업 – 공작기계, 산업기계 생산기반 구축
- 조선 산업 – 현대조선, 대우조선 등 세계적 조선소 육성
- 자동차 산업 – 현대자동차, 기아차 본격 양산 체제 돌입
- 전자 산업 – 삼성, 금성(LG)의 반도체·가전 개발 시작
- 석유화학 산업 – 여천, 울산 지역 석유화학 단지 조성
이 정책을 통해 한국은 비로소 ‘원자재–기계–제품’으로 이어지는 **완결형 산업구조**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4. 주요 산업 기반 시설의 건설
제3차 5개년 계획은 **전국을 산업지도로 바꾸는 전환점**이었다. 이 시기에 건설된 대표적 산업 시설은 다음과 같다:
- 울산공업단지 – 정유, 자동차, 화학, 조선의 메카로 발전
- 포항제철 제2기 확장 – 철강 생산 능력 폭발적 증가
- 창원기계공단 – 국산 산업기계 기술력 향상
- 여천 석유화학 단지 – 정밀화학 기반 형성
- 부산항, 인천항 확대 개발 – 수출입 물류 효율성 증대
이러한 인프라의 확충은 단순한 경제적 기반을 넘어서, **한국 경제의 독립성, 안정성, 확장성**을 가능케 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5. 성과와 숫자로 본 변화
계획 기간 동안 한국 경제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지표를 기록했다:
- 연평균 GNP 성장률: 10.3%
- 1인당 국민소득: 276달러(1971) → 526달러(1976)
- 수출액: 10.5억 달러 → 28.5억 달러
- 공업생산 증가율: 연평균 15% 이상
- 중화학공업 비중: 전체 산업 생산의 30% 돌파
이 수치는 단순한 성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한국은 이제 가발, 신발, 섬유 수출국에서 자동차, 철강, 조선, 전자 산업국가로 전환하고 있었다.
6. 과제와 비판 (고도성장의 그림자)
물론 이 시기에도 구조적 문제는 존재했다:
- 대기업 중심의 성장 – 재벌 체제의 기틀 형성
- 빈부 격차 심화 – 도농 간 불균형 지속
- 외채 증가 – 산업시설 확장을 위한 차관 의존
- 노동 문제 확대 – 열악한 노동환경과 임금문제
이러한 문제들은 이후 제4차 계획 시기와 전두환 정부 시기로 이어지는 구조 개혁의 이슈로 떠오르게 된다.
7. 결론: 산업국가 대한민국의 토대를 세우다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대한민국이 **‘기술’과 ‘산업’ 기반을 갖춘 국가로 전환한 시기**였다. 포항의 용광로, 울산의 조선소, 창원의 기계공장은 단지 산업시설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심장**이었다.
이 계획 없이는 현대자동차도, 삼성전자도, 포스코도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그 속도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지만, **압축 성장을 통한 산업 자립**은 이 시기에 본격화되었고, 오늘날 한국의 경제 위상은 그 초석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