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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차일드 가문
Long live the Republic of Korea
2025. 4. 27.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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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스차일드 가문은 누구인가? (금융 왕조의 탄생)
- 로스차일드 가문의 기원은 18세기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작은 유대인 게토(주드엔가세)에서 시작됐다.
- 창시자는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Mayer Amschel Rothschild, 1744–1812).
- 그는 귀족 가문들을 상대로 금융업(대부업, 투자)을 시작했고, 특히 헤센 카셀의 빌헬름 9세 공작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큰 부를 쌓았다.
- 마이어는 자신의 다섯 아들을 유럽 각지로 보내 국제적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 아문 로스차일드: 프랑크푸르트
- 살로몬 로스차일드: 빈(오스트리아)
- 네이선 로스차일드: 런던(영국)
- 칼 로스차일드: 나폴리(이탈리아)
- 제임스 로스차일드: 파리(프랑스)
🔥 핵심: 5명의 아들이 각각 유럽 주요 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금융업을 확장함으로써 '최초의 국제 금융 네트워크'를 완성했다.
2. 로스차일드 가문은 어떻게 부를 축적했는가? (전쟁과 금융)
-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1803~1815) 당시 로스차일드는 유럽 각국 정부에 군자금을 융통해주면서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 특히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의 승리를 미리 알고 채권시장에서 대규모 매매를 했다는 전설이 유명하다.
- (※ 단, "워털루 전설"은 과장된 부분이 많다. 실제로는 전투 소식 전후에도 상당한 금융 거래는 있었지만, 음모론처럼 조작한 것은 아니다.)
- 전쟁과 재건 과정에서 국채 거래를 통해 엄청난 이익을 남겼고, 유럽 각국의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3. 로스차일드 가문은 실제로 세계를 지배했는가? (사실과 과장)
- 19세기 후반까지 로스차일드는 유럽 금융 세계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주요 철도 사업, 광산 사업, 채권 발행을 주도.
- 영국은행(Bank of England)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
- 수에즈 운하 매입 자금(1875년)도 영국 정부를 대신해 로스차일드 가문이 제공.
- 하지만 20세기 초 이후:
- 미국의 금융자본(록펠러, 모건 등) 등장
- 두 차례 세계대전
- 유럽 왕가 몰락과 공산혁명
- 반유대주의 확산 로 인해 로스차일드 가문은 과거만큼 절대적인 금융 지배력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 요약: 로스차일드는 19세기 유럽 금융의 왕이었지만, 현대에는 세계를 '지배'하지 않는다. 지금은 매우 부유한 명문가 중 하나일 뿐이다.
4. 로스차일드 가문을 둘러싼 주요 오해와 음모론
- "세계 중앙은행을 모두 조종한다"
→ 중앙은행은 각국 정부와 법에 의해 운영된다. - "제1, 2차 세계대전을 조장했다"
→ 직접적인 증거 없음. 국제 금융업자들이 전쟁에서 이익을 본 경우는 있지만, 전쟁을 '조장'했다는 주장은 근거 부족. - "오늘날 500조 달러를 소유한다"
→ 과장. 로스차일드 가문의 실제 자산은 추산이 어렵지만, '국가 예산 수준'의 부를 소유했다는 주장은 허구일지. - "유대인 금융 음모"
→ 반유대주의적 선전물(예: '시온 장로 의정서')과 연결되어 퍼진 허구적 주장.
5. 오늘날 로스차일드 가문의 모습
- 현재 로스차일드 가문은 여러 분파로 나뉘어 있으며,
- Rothschild & Co (유럽 투자은행)
- Edmond de Rothschild Group (스위스 자산관리회사) 등을 운영하고 있다.
- 정치적 영향력은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금융, 예술, 환경 분야에서 상당한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다.
- 가문은 여전히 '은둔적'으로 움직이며, 공식적으로 언론 노출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고수한다.
🌟 요약: 로스차일드 가문은 오늘날에도 강력한 금융 명가이지만, '세계 지배자'들 중
한 가문일 가능성이 있다는건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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